김훈의 <남한산성>을 보면 청나라 칸이 조선 조정이 보낸 글을 보고 '(말을 빙빙돌려) 무엇을 말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조선 조정에게 보내는 글을 쓸 때 말을 돌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들에는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참 많은데 칸의 말 역시 그렇다. 물론 글의 장르나 대상이 지닌 성격에 따라 달라야 하겠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거의 분노하는 심정으로 블로그에 들어온 것은 한 스포츠 신문의 기사<[황덕준의 크로스 오버] 세계 피겨요정 김연아의 F학점> 때문이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김연아의 학점 문제를 다룬 소식들을 포털에서 접했었다. 내가 본 기사는 두 개였는데(어떤 신문이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있는 기사들을 클릭해서 본 것이라...아마 이 기사인 것 같다. )
하나는 김연아가 고려대에서 수강한 과목을 담당한 강사가 "운동선수로서 특수성을 감안하겠지만 몇 번의 이메일을 보냈으나 과제를 제출하지도 않고 아무런 소식도 없어서 학점을 줄 수 없다" 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내용에 덧붙어 운동을 하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지를 다룬 기사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난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난 김연아가 왜 굳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게다가 수업도 들을 수 없는 국내 대학에 이름만 걸어 놓는지에 대해 이전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 위에서 말한 기사를 읽고 솔직히 화가 좀 났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김연아에 대한 옹호 아닌 옹호를 하면서도 (자신의 글에 대한 비난을 예상했는지) 미셸 위 예를 들며 김연아 역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양비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기사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김연아를 옹호하는 논리가 너무 부실하다.
기사에 자신의 약력을 크게 붙인 것은(위에 링크된 원 기사를 스크롤 해서 맨 마지막을 보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내 자존심을 걸고 쓰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차원에서 보기에 솔직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일단 기사의 일부분을 보자.
고려대는 김연아를 입학시키면서 대학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하며 희색이었다는 보도를 기억한다. 이제와서 왜 김연아가 학업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흘리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측과 김연아 사이에 뭔가 소통이 부족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현실적으로 대학생인 김연아가 출석일수가 모자라리라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지만, “출석도 부족하고 과제물 제출도 소홀히 한다”고 공개하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궁금할 정도로 새삼스럽다.
국위선양에 탁월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와 학교공부의 문제는 늘 논란거리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스포츠대회에서 성적이 나빠지면 또 그것대로 질타할 게 뻔하다. 어느 한 순간 모든 걸 다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는 쪽으로 국가나 사회가 기대하고 있다고 오해해버리면 중압감에 시달리느라 모든 걸 잃거나 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어린 나이일수록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자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로 간주할 만하다.
김연아를 위한 조언을 했다고 하지만 진정 그런 마음이었다면 대중매체를 통해 불만스럽게 말하는 대신 당사자와 먼저 그 같은 내용을 의논했어야 했다. 외국에 나가 있어서 연락이 안됐다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오죽 많은가. 요즘 세상에서 소통의 문제를 물리적인 접선 불통으로 핑계대는 쪽일수록 변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면
1. 고려대와 김연아 사이의 소통이 부족해졌다.
2. 김연아의 학업태도를 문제삼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3. 모든 걸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다가는 그 중압감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김연아는 어리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작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이다.
1과 2는 사실 같은 맥락이다.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학업태도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 어떻게 소통의 문제이며 어떤 저의가 있는지 먼저 그 기자에게 묻고 싶다. 물론 김연아가 미국에 있어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면 그 특수성을 인정하여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교강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관련된 다른 기사에 실린 해당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과제를 제출하라는 메일을 몇 번씩 보냈고 해당 에이전트에도 연락을 취했는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수의 입장에서는 F학점을 줄 수 밖에 없다. 여기엔 다른 타협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학점을 준다면 그건 교수의 양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해당 학교의 권위 및 학사 관리에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다.
3은 어떤가. 김연아가 미성년자인가. 이미 성인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저번 오서 코치와의 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을 때, 김연아는 신속히 트위터를 통해 '내가 결정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과 운명을 같이 했던 코치와의 결별이라는 중대한 일도 자신이 직접 결정하는 사람이 이런 일로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기자의 말대로 한 사람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차라리 휴학을 해라'라는 학과 교수의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휴학을 하든지, 아니면 자퇴를 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면 된다. 내 기억엔 우리나라 국민 어느 누구도 김연아에게 학사학위를 요구한 적이 없다.
이에 덧붙여 김연아와 연락이 안됐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 역시 실망스럽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인 김연아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 그야말로 더 큰 오해나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아닌가. 아마 기자의 말대로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소셜 네트워크를 썼냐고 비난했을 공산이 크다. 기자의 말은 "조용히 해결하지, 왜 대중매체에 터뜨려서 일을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냐"는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둘째, 어설픈 양비론이 필자와 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관점이 뚜렷하지 않은 글은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법이다. 글의 논지만 본다면 기자는 차라리 끝까지 김연아를 옹호하는 일종의 '확신범'이 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미셸 위의 예는 오히려 위에서 기자가 그토록 옹호한 김연아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며, 자신이 기껏 쌓아놓은 논리를 허물어 뜨리는 일종의 자살행위일 뿐이다. 기자의 논리대로 말하면 미쉘 위는 소위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한 이런 사족은 자신이 내세운 논리가 그다지 탄탄하지 않다는 의식이 만들어낸 방어막일 가능성이 높다. 양비론을 통해 소위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 역시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이런 저런 신문들을 보면서 몇몇 기자나 인사들이 기묘한 논리들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람들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고는 한다. 이번 기사 역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지나친 생각일까.
글을 쓰는 행위가 하늘을 이고 있을 정도로 엄숙한 일이라는 식의 말을 하는게 아니다. 나 역시 감히 그런 거창한 표현을 쓸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글쓰기가 자기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행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글쓰기란 논리의 싸움이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글쟁이라면 말이다.
* 제 포스트는 특정 기사가 갖는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김연아와 고려대학교 간의 일 자체는 이 포스트에서는 논외의 일입니다. 덧글을 다실 분들은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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