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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최고의 사랑>과 <감수성>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 구보, 세상을 읽다


북쪽에 오랑캐가 쳐들어와 평양성, 북한산성,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마지막 남은 감수성. 이 감수성의 장수들은 감수성[감수썽]이 풍부했으니....." 로 시작되는 개그콘서트의 감수성은 요즘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는 코너다.

  말 한 마디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기술은 출연진의 내공이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있음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동안 거의 빼놓지 않고 이 코너를 보게 됐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패전 위기에 몰려 감수성에 갇힌 임금은 장군들과 내시 그리고 지략가 대갈공명(물론 제갈공명의 패러디이다)에게 화풀이를 하는 순간,  갑자기 슬픈 음악이 깔리면서 그들의 속사정을 알고 사과하는 패턴이 짧게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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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 이런 식이다. [2011. 5. 29  감수성]  (출처)
             

                                           


 누구나 부담없이 잠깐 웃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계속 이 코너를 보면서 난 문득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어떤 논평보다도 더 큰 통찰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이전에 남보원이 그랬듯이 말이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임금은 신하들의 속사정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한다. 물론 이는 형식 미학적으로 반전을 노리기 위한 설정이다. 
반전의 낙차가 클수록 더 큰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에 신하들의 속사정은 늘 자신들을 야단치는 임금의 상상력을 능가한다. 그러기에 야단친 임금은 항상 무안해진다. 그 무안함은 사려깊지 못한 자기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요즘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이지만  난 그보다 여주인공 구애정(공효진 분)이라는 캐릭터 설정에 관심이 간다.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비호감 연예인이다. 드라마 설정에 따르면 10년 전 아이돌 그룹 '국보소녀'의 리더였던 그는 그룹 해체, 음주폭행, 연애스캔들 등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비호감이 되고 결국 생계형 연예인이 되고 만다. 이후 스토리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구애정은 독고진(차승원 분)이라는 톱스타와 윤필주(윤계상 분)라는 완벽남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고 짐작컨대 구애정은 결국 독고진과 맺어질 것이다. 
  이번 주 방영분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왜 과거에 구애정이 음주폭행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은근슬쩍 보여준 부분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구애정의 술버릇으로 인해 지나가던 아주머니와 시비가 붙게 되고 이 일이 음주폭행으로 번지게 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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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MBC공식 이미지 제공 사이트
http://withmbc.com


 모르긴 해도 아마 구애정은 이후 자신에게 씌워졌던 모든 오해들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비호감의 이미지도 벗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의 비호감 이미지는 전후 사정을 모르고 혹은 의도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채,황색 언론이 일어난 현상만으로만 만들어낸 기사들에 의한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최고의 사랑>은 현재 연예계나 방송계 그리고 언론에 대해 은근슬쩍 비꼬고 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암묵적 합의와 같은 냄새가 나지 않는가)
 물론 개그맨들이나 드라마 작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개콘의 <감수성>과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 한 가지를 제공한다.  


우리 역시 또 하나의 <감수성>의 임금이 되어 또다른 비호감 구애정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빚어지는 오해는 흔히 있는 일이고 그로 인해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사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상에 대해 보다 사려깊은 사고와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그런가.  
 최근에 스포츠 방송 여자 아나운서가 자살을 했다. 난 케이블 방송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유명 야구 선수와 교제를 했었는지,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접한 정보는 모두 언론의 기사들을 통해서였고, 그 기사들의 대부분은 받아적기나 추측에 급급한 질 낮은 것들이었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난 그가 비호감 연예인이었는 줄은 며칠 전에야 알았다. 며칠 전 교통사고를 낸 유명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혹시 또 다른 <감수성>의 임금이 되어 속사정을 모른 채 그들에게 윽박지르거나 야단친 것은 아니었을까. 옥주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1등을 하여 안티팬들의 노골적인 비판을 잠재운 이후 나온 또 다른 주장 중의 하나는 "주현은 이전에 개념없는 일들을 했기 때문에 싫다"였다. 나는 그 "개념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개념없는 일"이 과연 그녀가 정말 그렇게 한 일인지 여부는 연예계와 거리가 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낸 유명 아이돌 가수 역시 우리가 그의 가족이거나 관계자가 아닌 한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마치 <최고의 사랑>에서 비호감이 된 구애정에게는 말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건 연예계나 방송가에 국한해서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연일 신문에 기사화되는 저축은행 사태는 또 어떤가. 물론 나는 범법행위를 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나는 우리들이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사고하려는 시도를 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언론에서 보도하는 기사들을 외면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도되는 수많은 사태들의 본질이 그 기사들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사 하나로 간단히 매도되고 증폭되며 비호감으로 찍히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 받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긴장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 우리 역시 또 하나의 '구애정'으로 몰리게 될 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하다. 어쩌면 우린 날마다 내가 또 다른 구애정이 되지 않을까 무의식 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이상한 논리 - 거위의 배를 가르지는 말자 구보, 세상을 읽다

옥주현 보며 최고의 사랑 '구애정' 떠올라

  본 포스트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MBC공식 이미지 제공 사이트 http://withmbc.com/ 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로 포스트 접근을 제한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고현정은 꽤 긴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복귀 후 몇 개의 드라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현재 한국 최고의 탤런트의 위치에 올랐다."
 

 고현정을 이렇게 언급한다고 해서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식의 평가는 나만의 주관적 의견이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고현정'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이와 유사한 언급들이 실린 기사나 블로그의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현정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분한 그녀의 연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고현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현정은 원래 연기자 출신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스코리아가 된 후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녀가 처음 출연한 드라마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였음을 기억한다. (아마 이장의 철부지 막내딸 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고현정이 방송사 공채 출신 연기자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연기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방송사 공채 출신이라고 해도 고현정보다 연기력이 못한 탤런트들을 부지기수다) 특채이든 공채이든 아니면 막말로 낙하산이든 연기력만 갖춘다면 적어도 드라마에서 그사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명백백한 논리가 같은 연예계에서도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아니 말을 다시 해야겠다. '나는 가수다'라는 특정한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나가수'에서 새로 합류한 옥주현은 그녀가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 내가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들로 인해 비난들을 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옥주현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이돌은 우리 사회에서 선망과 경멸이라는 모순된 두 개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다.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보다는 춤같은 퍼포먼스를 전면화한다는 비난에서 대부분의 아이돌 혹은 아이돌 그룹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아이돌 가수들이 모두 가창력이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옥주현은 이미 아이돌 시절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만약 옥주현의 가창력이 떨어졌다면 과연 그 전쟁터같은 뮤지컬계에서 그녀가 그렇게 오랫동안 버텨올 수 있었을까. 누구처럼 아이돌 시절 인기를 밑천으로 뮤지컬계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게다가 요즘 기사로 도배되는 것처럼 옥주현은 '비호감'연예인이다. (난 옥주현이 비호감 연예인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왜 비호감이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시 말해 옥주현에게 아이돌 시절의 인기는 공중의 연기처럼 사라진지 오래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뮤지컬계에서 자리를 굳히게 한 힘은 오로지 실력이다.


나 역시 저번 일요일에 방영된 나가수를 봤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옥주현의 노래는 분명히 호소력이 있었고 그 역시 최선을 다해서 부른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녀가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기존의 나가수에 참여한 가수들에게 적어도 실력에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무대였다.



어쩌면 옥주현이 1등을 한 것이 사달의 원인일지 모른다. 그녀가 4위나 5위쯤 했다면 적어도 지금같은 이런 이상반응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프로그램의 편집과 순번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가 보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편집은 라이브로 노래를 듣던 당시 청중들이 순위를 매기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을 것이며, 순번 역시 맨 마지막이라고 해서 항상 유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전의 경우들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옥주현에 대한 대개의 비난은 근거없는 것이거나 괜한 트집잡기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평자는 옥주현에 대한 악플들이 나가수를 통해 희망을 보려는 약자들의 몸짓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딱하게도 비약이나 물타기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논리라면 사회적 약자들(그 평자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지만)의 주장이나 요구들은 그것이 이치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가수를 보며 가수들의 열정에 탄복을 거듭하는 평범한 시청자에 불과하다. 난 7명의 가수들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는 매번 박수를 보낼 수 박에 없다. 물론 방송 말미에 나오는 순위 결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건 500명의 청중들의 생각일 뿐, 나의 느낌과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그냥 그들의 열정어린 노래를 즐기면 된다.  


난 사람들이 나가수를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는 좀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황금알에 욕심이 나서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김연아와 F학점 - 황덕준 기자에게 구보, 세상을 읽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보면 청나라 칸이 조선 조정이 보낸 글을 보고 '(말을 빙빙돌려) 무엇을 말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조선 조정에게 보내는 글을 쓸 때 말을 돌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들에는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참 많은데 칸의 말 역시 그렇다. 물론 글의 장르나 대상이 지닌 성격에 따라 달라야 하겠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거의 분노하는 심정으로 블로그에 들어온 것은 한 스포츠 신문의 기사<[황덕준의 크로스 오버] 세계 피겨요정 김연아의 F학점> 때문이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김연아의 학점 문제를 다룬 소식들을 포털에서 접했었다. 내가 본 기사는 두 개였는데(어떤 신문이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있는 기사들을 클릭해서 본 것이라...아마 이 기사인 것 같다. )

하나는 김연아가 고려대에서 수강한 과목을 담당한 강사가 "운동선수로서 특수성을 감안하겠지만 몇 번의 이메일을 보냈으나 과제를 제출하지도 않고 아무런 소식도 없어서 학점을 줄 수 없다" 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내용에 덧붙어 운동을 하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지를 다룬 기사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난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난 김연아가 왜 굳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게다가 수업도 들을 수 없는 국내 대학에 이름만 걸어 놓는지에 대해 이전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 위에서 말한 기사를 읽고 솔직히 화가 좀 났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김연아에 대한 옹호 아닌 옹호를 하면서도 (자신의 글에 대한 비난을 예상했는지) 미셸 위 예를 들며 김연아 역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양비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기사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김연아를 옹호하는 논리가 너무 부실하다.


기사에 자신의 약력을 크게 붙인 것은(위에 링크된 원 기사를 스크롤 해서 맨 마지막을 보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내 자존심을 걸고 쓰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차원에서 보기에 솔직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일단 기사의 일부분을 보자.

 

고려대는 김연아를 입학시키면서 대학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하며 희색이었다는 보도를 기억한다. 이제와서 왜 김연아가 학업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흘리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측과 김연아 사이에 뭔가 소통이 부족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현실적으로 대학생인 김연아가 출석일수가 모자라리라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지만, “출석도 부족하고 과제물 제출도 소홀히 한다”고 공개하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궁금할 정도로 새삼스럽다.


국위선양에 탁월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와 학교공부의 문제는 늘 논란거리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스포츠대회에서 성적이 나빠지면 또 그것대로 질타할 게 뻔하다. 어느 한 순간 모든 걸 다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는 쪽으로 국가나 사회가 기대하고 있다고 오해해버리면 중압감에 시달리느라 모든 걸 잃거나 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어린 나이일수록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자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로 간주할 만하다.


김연아를 위한 조언을 했다고 하지만 진정 그런 마음이었다면 대중매체를 통해 불만스럽게 말하는 대신 당사자와 먼저 그 같은 내용을 의논했어야 했다. 외국에 나가 있어서 연락이 안됐다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오죽 많은가. 요즘 세상에서 소통의 문제를 물리적인 접선 불통으로 핑계대는 쪽일수록 변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면
 

1. 고려대와 김연아 사이의 소통이 부족해졌다.


2. 김연아의 학업태도를 문제삼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3. 모든 걸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다가는 그 중압감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김연아는 어리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작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이다.



1과 2는 사실 같은 맥락이다.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학업태도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 어떻게 소통의 문제이며 어떤 저의가 있는지 먼저 그 기자에게 묻고 싶다. 물론 김연아가 미국에 있어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면 그 특수성을 인정하여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교강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관련된 다른 기사에 실린 해당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과제를 제출하라는 메일을 몇 번씩 보냈고 해당 에이전트에도 연락을 취했는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수의 입장에서는 F학점을 줄 수 밖에 없다. 여기엔 다른 타협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학점을 준다면 그건 교수의 양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해당 학교의 권위 및 학사 관리에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다.  

3은 어떤가. 김연아가 미성년자인가. 이미 성인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저번 오서 코치와의 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을 때, 김연아는 신속히 트위터를 통해 '내가 결정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과 운명을 같이 했던 코치와의 결별이라는 중대한 일도 자신이 직접 결정하는 사람이 이런 일로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기자의 말대로  한 사람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차라리 휴학을 해라'라는 학과 교수의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휴학을 하든지, 아니면 자퇴를 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면 된다. 내 기억엔 우리나라 국민 어느 누구도 김연아에게 학사학위를 요구한 적이 없다.  

이에 덧붙여 김연아와 연락이 안됐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 역시 실망스럽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인 김연아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 그야말로 더 큰 오해나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아닌가. 아마 기자의 말대로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소셜 네트워크를 썼냐고 비난했을 공산이 크다. 기자의 말은  "조용히 해결하지, 왜 대중매체에 터뜨려서 일을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냐"는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둘째, 어설픈 양비론이 필자와 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관점이 뚜렷하지 않은 글은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법이다. 글의 논지만 본다면 기자는 차라리 끝까지 김연아를 옹호하는 일종의 '확신범'이 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미셸 위의 예는 오히려 위에서 기자가 그토록 옹호한 김연아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며, 자신이 기껏 쌓아놓은 논리를 허물어 뜨리는 일종의 자살행위일 뿐이다. 기자의 논리대로 말하면 미쉘 위는 소위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한 이런 사족은 자신이 내세운 논리가 그다지 탄탄하지 않다는 의식이 만들어낸 방어막일 가능성이 높다. 양비론을 통해 소위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 역시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이런 저런 신문들을 보면서 몇몇 기자나 인사들이 기묘한 논리들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람들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고는 한다. 이번 기사 역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지나친 생각일까.

글을 쓰는 행위가 하늘을 이고 있을 정도로 엄숙한 일이라는 식의  말을 하는게 아니다. 나 역시 감히 그런 거창한 표현을 쓸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글쓰기가 자기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행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글쓰기란 논리의 싸움이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글쟁이라면 말이다.



* 제 포스트는  특정 기사가 갖는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김연아와 고려대학교 간의 일 자체는 이 포스트에서는 논외의 일입니다. 덧글을 다실 분들은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지금 김태희에게 필요한 것 구보, 영화를 보다

김태희는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요소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가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즉 특정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다음에 왜 그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하기 전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왜 그런가. 영화 흥행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개입되고 사람들은 당연히(?) 그 모든 요소들, 특히 변수들까지 감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흥행에 대한 예상은 없고 항상 사후적인 설명이나 평가만 있을 뿐이다.

물론 영화 흥행 공식이 있을 수는 있다. 당장 포털 등을 검색해보면 그럴듯한 영화 흥행 공식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공식에 따라 영화를 제작한다면 100%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수많은 제작자들과 감독들이 골머리를 앓지는 않을 것이다. 공식은 공식일 뿐이고 그 공식을 적용하는 대상은 수많은 변수들로 점철된 사람들과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흥행 공식은 번번히 빗나간다. 흥행 공식에 따르면
<과속 스캔들>같은 영화는 흥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화 관게자들은 <과속 스캔들>이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나 역시 버스에서 극장에 내걸린 그림을 보고 오래 못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주연인 차태현 역시 흥행을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의 배우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제작 시 별로 화제가 된 적도 없었고 말이다. 



슬픈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는데, 이번 김태희가 주연한
<그랑프리>역시 포스터를 보는 순간 슬픈 예감이 든 영화였다. 김태희가 말에 앉아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가. 나에게는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김태경님의 말대로 그 예쁜 배우에게 승마복을 입히는 것이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선택인가 말이다.




                                                          바로 이 포스터 말이다.
(출처)


김태희의 빼어난 외모가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리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실 비현실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긴 배우가 비단 김태희 하나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까지 550만이 봤다는
<아저씨>의 원빈 역시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배우 중의 하나다. 대표 미남배우 장동건 역시 비현실적 외모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이 주연한 영화에서 관객의 극 중 몰입이 방해된다는 식의 해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 곳에 적용되지 못하는 논리는 이미 그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흥행 공식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난 배우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독의 역량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일정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그런 배우는 극히 소수에 그친다.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박쥐>의 김옥빈을 보자. <여고괴담 4>로 데뷔한 그녀는 사실 얼굴이 좀 예쁜 평범한 배우였다. <박쥐> 이전에 그가 다른 것이 아닌 연기로 대중에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박쥐>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송강호의 연기가 아니라 김옥빈의 그것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감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우들을 최적화시켜 자신의 세계에 배치하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김옥빈의 연기가 늘어서라고 말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쥐> 이후 캐스팅된 <여배우들>에서 김옥빈의 연기를 보면 박찬욱이 배우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데 얼마나 탁월한 능력을 지녔는지에 감탄하게 된다.)



시나리오 문제는 외모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그 빼어난 외모 떄문에  김태희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사실 많지 않다. 적절한 시나리오를 찾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좋은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는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애당초 선택의 여지가 좁은 상황에서는 실력이 있어도 발휘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시기에 김태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급함이 아닐까.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김태희에게 벗을 수 없는 부담이자 또한 극복해야 할 짐이기도 하다. 이를 일시에 타개하려는 시도는 성급함을 낳고 이것이 오히려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놓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랑프리>의 감독이 드라마 <아이리스>를 감독했다는 사실은 김태희가 얼마나 영화 흥행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나는 김태희가 조금 더 속도를 늦췄으면 좋겠다. 또한 배역에도 욕심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주연이 아니면 어떤가. '김태희=주연'이라는 전제가 오히려 그녀를 더욱 수렁으로 밀어넣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줄 감독을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배역, 설사 그것이 조연이라고 해도 멀리 보면 그게 남는 장사일 것이다. 잠깐 배우를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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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바깥은 없다 - <이라크에 '자원'해서 다녀왔다고>에 부침 구보, 세상을 읽다

이라크를 '자원'해서 다녀왔다고?


지난 주였던가.

갈매기살이 뭔지도 모르는 대학 1학년 여학생 한 명과 종로 3가에 돼지고기를 먹으러 갔었다. 어둑해질 무렵, 갈매기살로 유명한 골목(맞나? 하여튼 난 그렇게 알고 있다)으로 들어가니 이미 저녁에 한 잔 걸치러 온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겨우 길거리에 자리를 하나 잡고 고기를 주문했다. 물론 갈매기살이었다.

내가 갈매기살을 주문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내가 간 곳이 갈매기살로 유명한 골목이라고 알고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으며, 갈매기살이 가장 많이 팔릴 것이므로 파는 고기 중에 가장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삼겹살을 먹는 사람들도 눈에 띠었고 고기를 다 먹은 듯한 사람들 중에는 입가심을 하려는 듯 국수나 냉면을 먹기도 했지만 역시 대세는 갈매기살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 대부분은 역시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다는 점이다



                                                  뭐 대강 이런 갈매기살이었다... 이미지 출처  



몇 개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은 그 골목에서 길거리까지 테이블로 두고 모두들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지만 그들이 다른 부위가 아닌 갈매기살을 주문한 이유는 각각 다를 것이다. 어느 사람은 갈매기살을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좋아해서 혹은 수없는 회식에서 먹었던 삼겹살에 질려서, 또다른 사람은 나처럼 갈매기살을 시키는 것이 가장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물어보지 않는 이상 그들이 다른 부위가 아닌 굳이 갈매기살을 시킨 이유들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최소한의 공통점들을 짐작할 수는 있다. 


첫째, 그 골목이 갈매기살로 유명하다는 점.  (특정 음식으로 유명한 곳에서 그걸 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다) 

둘째, 그들이 '적어도' 갈매기살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점. (갈매기살을 싫어했다면 그 곳에 오지 않았거나 적어도 갈매기살을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날 그 곳에서 나를 포함해서 갈매기살을 주문해서 먹던 모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위의 조건에 부합할 것이다.(물론 직장 상사가 갈매기살을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온 부하직원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사람이 직접 주문을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테니 제외하자)  


그렇다면 그들의 선택에는 공통된 조건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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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갈매기살' 이야기가 길어졌다. 내가 갈매기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구축하는 자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그 구조는 우리에게 선택이 단 하나의 이유로만 결정하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주체가 특정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수많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파병에 지원한 이유는 아마 지원자 수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공통된 기반이 있고 이 기반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에 기인한다.


나 역시 군 복무를 할 때 해외파병에 지원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UN 평화유지군으로 '앙고라'에 파병되는 것이었는데 지원률도 굉장히 높았다. (요즘 도박 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그 연예인이 파병된 그 때이다)  인사계(요즘은 행정보급관이라고 하나? 정확히 모르겠다)에게 '죽을려고 거기 가냐?'고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 결국 포기했지만 그 때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매력적인 보수 때문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세번째 요건도 내가 파병을 지원하려는 이유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군복무 기간은 똑같은데 이왕이면 돈이나 많이 받자' 뭐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제대를 하면 학교에 복학할 예정이었지만 등록금이나 생활해야 할 금전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었다.(그렇다고 내가 부자는 아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 때 대학교 등록금은 상대적으로 쌌을 뿐이다.) 즉 내가 제대 후 써야할 돈 때문에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당시 1000만원이 훨씬 넘는 수당 (당시 병장 월급이 1만 2천원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체가 탐이 났을 뿐이다.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데 왜 좋은 기회를 그냥 차버리겠는가. 아닌 말로 님(군복무)도 보고 뽕(엄청난 보수)도 딸 수 있는데.  


나는 그 당시 파병에 대한 높은 지원률에는 사병 신분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높은 수당 역시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소위 '돈독'이 올랐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다. 당시 사병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즉 <파병을 지원하거나 지원하지 않거나>다. 거지같은 고참 보기 싫어서 혹은 지금 부대 생활이 싫어서가 파병 지원의 이유들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이 군인이라는, 적어도 앞으로 군복을 1년 이상은 벗을 수 없다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제한된 선택만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곳에 나를 던져보고 싶어서,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어서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각 주체들에게  선택을 하게 만든 매커니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과연 당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과연 파병에 지원했을까. 물론 지원할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 비율은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연 민간인 신분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파병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즉 그들의 선택은 수많은 다른 이유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그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은 '군복무'라는 공통된 기반이 절대적 조건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이다. 막말로 '이왕이면...'이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을 구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푸코의 '권력의 바깥은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편이고 구조 역시 권력의 다른 모습이라고 믿는다. 주체에게 제한된 선택만이 존재하는 구조에서 수없이 많은 이유들로 주체들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의 심연에는 공통된 기반이 존재한다. 하지만 난 구조가 주체로 하여금 그 선택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방문자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이 포스트에 한해 덧글을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른 방문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남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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