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보내주세요!

hichicok2.egloos.com

포토로그 마이가든

 


90년대 청춘을 위한 시간 -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대한 단상 구보, 세상을 읽다

유희열의 청춘나이트 - 추억이란 그 기억속으로...  

 우연이었을까. 
 

 <건축학 개론> 개봉 시기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청춘나이트>를 방영한 시기가 겹치는 것은.  


 그제 영화 <건축학 개론>을 포스팅하면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사물이라고 말했었는데 오늘 새벽 스케치북의 <청춘 나이트>는 그 사물의 영역이 단순히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개체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90년대 초반 학번을 부여받은 나에게 <스케치북>의 노래들은 내가 아직 <건축학 개론>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일깨운 것이다. 


 
 기억은 재생하는 것은 분명 사물이지만 그 사물은 때로는 음악이나 노래로 혹은 음식이나 공간 심지어 특정한 브랜드로 모습을 달리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내 동생은 아직도 청바지는 리바이스만 고집한다....) 결국 사물이란 기억과 감각을 되살리는 매개물이자 맥락을 제공하는 마술적 존재인 것이다.  


 90년대는 이념과 구호로 점철됐던 시기의 마지막 불꽃을 볼 수 있는 시기였으며 한 편으로는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자본주의의 프레임이 구축되는 과도기였다. 거대 이념에서 벗어나면서 개인은 중요해졌고 그로 인해 음악은 개인의 내면을 노래할 수 밖에 없었다.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이 말한 것처럼 90년대는 싱어송라이터의 전성 시대였다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개인이 중요해진 시대였기 때문이리라.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이나 <오래전 그날>을 들으며 결혼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이입했던가.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노래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개인의 심정과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윤종신이 괜히 '일상적 가사'의 대가가 아닌 것이다. 그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타고난 재능 때문이겠지만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고 그를 통해 더욱 단련된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 한 학생에게서 성신여대 앞 '스파비'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 마음 한 켠이 '덜컹'했다면 거짓말이고, 잠시, 쓸쓸해졌던 것은 사실이다. 힘이  들거나 문득 무엇이 그리워질 때면 그 곳에 가서 혼자 차를 마시며 책을 읽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 공간이 내게 특별한 기억들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에게 또 하나의 '사물'이 사라진 것이다.



                                사진 출처 h-tp://blog.naver.com/jms622?Redirect=Log&logNo=100122960661 

 
하지만 오늘 새벽의 <스케치북> 그리고 영화 <건축학 개론>은 그 사물들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늘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내게 새롭게 인식하게 한 또 하나의 '사물'이었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사물이 기억을 재생하다 - 건축학 개론(2012) 구보, 영화를 보다

<건축학개론>-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


 기억에 대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 


 대부분의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기억을 다룬다. 결국 이야기는 발화자가 지니는 기억의 최대치이며 청자는 (혹은 독자는) 그 이야기가 갖는 힘으로 인해 그에 감염된다. 감염의 정도는 이야기의 힘이 지니는 강도나 청자가 공감하는 정도에 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에게는 <건축학 개론>을 말하기에 '공감'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는게 나을 듯 싶다. 
 그간 젊은 시절의 기억을 다룬 영화는 많았고 그 중 얼마는 직접 보기도 했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부터 <러브레터>,<4월 이야기>, <번지점프를 하다>를 거쳐 가깝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써니>까지. 


                                   [그래, 그 때는 저런 공중전화를 쓰곤 했다. 삐삐도 별로 없던 시절...] 
 
 

 사실 우린 그동안 그런 영화들로 인해 경험하지 못했던 이전 세대의 기억을 추억하도록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난 <친구>의 친구들처럼 까까머리와 후크달린 깜장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교련복을 입기는 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선도부에 의해 린치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억의 편린들이 끼워맞춰진 이야기들을 마치 우리 세대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추억하도록 요구당한 것은 아닌가 말이다. 

  
 사실 기억을 재생하도록 만드는 힘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사물에 존재한다. 서사는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물은 특정한 시대를 대변해 주는 것이면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동일한 경험치를 기본적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이야기의 힘만 아니라 적절한 사물을 배치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저런 시선으로 여자를 혹은 남자를 바라보지 않았던가...] 



 DISCMAN이라는 하얀 글씨가 박힌 CD 플레이어는 바로 80년대 말, 90년대 초중반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경험치를 부여한 대표적 사물이다. 워크맨처럼 그냥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커서 백팩(그 시절에는 배낭이라고 불렸던)에 넣고 이어폰으로 연결하여 들었던 그 CD 플레이어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재생함으로써 완벽하게 그 시절을 복원한다. <기억의 습작>은 전람회의 대표적인 곡이자 90년대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가장 적절한 곡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청춘을 보냈던 우리들이 모두 어느새 잊고 있었던 곡이었기에 그걸 일깨우는 아찔한 느낌은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극대화된다.  



 마치 <써니>에서 '라붐'의 'reality'와 촌스런 헤드폰에서 떠올릴 수 밖에 없던 그 느낌은 <건축학 개론>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의 순진함과 어설픔'을 통해 본격화된다. 스무 살의 승민과 서연은 그 나이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청바지와 약간은 촌스러운 하얀 운동화를 신고 벤치에 앉아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은 나에게는 아름답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아픈 기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20대를 지낸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기억이자 몇 가지 디테일로 인해 90년대 20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승민이 서연에게 전람회 앨범을 돌려주는 장면은 또 어떤가. 나 역시 스무 살 즈음에 이런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기도 했고 거리에서 혹은 학교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수없이 바라보며 그 때마다 가슴이 '덜컹'했던 기억이 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내가 직접 그리고 스스로 경험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경험에는 굳은 살이 박힌다.      




 <건축학 개론>은 90년대 20대를 보냈던 사람들이 영화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전 세대가 거쳤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마치 우리의 기억처럼 추억하도록 만드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시간'인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최고의 사랑>과 <감수성>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 구보, 세상을 읽다


북쪽에 오랑캐가 쳐들어와 평양성, 북한산성,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마지막 남은 감수성. 이 감수성의 장수들은 감수성[감수썽]이 풍부했으니....." 로 시작되는 개그콘서트의 감수성은 요즘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는 코너다.

  말 한 마디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기술은 출연진의 내공이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있음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동안 거의 빼놓지 않고 이 코너를 보게 됐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패전 위기에 몰려 감수성에 갇힌 임금은 장군들과 내시 그리고 지략가 대갈공명(물론 제갈공명의 패러디이다)에게 화풀이를 하는 순간,  갑자기 슬픈 음악이 깔리면서 그들의 속사정을 알고 사과하는 패턴이 짧게 반복된다.


 
             "
                                                     대강 이런 식이다. [2011. 5. 29  감수성]  (출처)
             

                                           


 누구나 부담없이 잠깐 웃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계속 이 코너를 보면서 난 문득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어떤 논평보다도 더 큰 통찰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이전에 남보원이 그랬듯이 말이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임금은 신하들의 속사정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한다. 물론 이는 형식 미학적으로 반전을 노리기 위한 설정이다. 
반전의 낙차가 클수록 더 큰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에 신하들의 속사정은 늘 자신들을 야단치는 임금의 상상력을 능가한다. 그러기에 야단친 임금은 항상 무안해진다. 그 무안함은 사려깊지 못한 자기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요즘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이지만  난 그보다 여주인공 구애정(공효진 분)이라는 캐릭터 설정에 관심이 간다.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비호감 연예인이다. 드라마 설정에 따르면 10년 전 아이돌 그룹 '국보소녀'의 리더였던 그는 그룹 해체, 음주폭행, 연애스캔들 등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비호감이 되고 결국 생계형 연예인이 되고 만다. 이후 스토리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구애정은 독고진(차승원 분)이라는 톱스타와 윤필주(윤계상 분)라는 완벽남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고 짐작컨대 구애정은 결국 독고진과 맺어질 것이다. 
  이번 주 방영분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왜 과거에 구애정이 음주폭행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은근슬쩍 보여준 부분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구애정의 술버릇으로 인해 지나가던 아주머니와 시비가 붙게 되고 이 일이 음주폭행으로 번지게 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Microsoft

 
                                      출처 : MBC공식 이미지 제공 사이트
http://withmbc.com


 모르긴 해도 아마 구애정은 이후 자신에게 씌워졌던 모든 오해들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비호감의 이미지도 벗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의 비호감 이미지는 전후 사정을 모르고 혹은 의도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채,황색 언론이 일어난 현상만으로만 만들어낸 기사들에 의한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최고의 사랑>은 현재 연예계나 방송계 그리고 언론에 대해 은근슬쩍 비꼬고 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암묵적 합의와 같은 냄새가 나지 않는가)
 물론 개그맨들이나 드라마 작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개콘의 <감수성>과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 한 가지를 제공한다.  


우리 역시 또 하나의 <감수성>의 임금이 되어 또다른 비호감 구애정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빚어지는 오해는 흔히 있는 일이고 그로 인해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사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상에 대해 보다 사려깊은 사고와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그런가.  
 최근에 스포츠 방송 여자 아나운서가 자살을 했다. 난 케이블 방송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유명 야구 선수와 교제를 했었는지,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접한 정보는 모두 언론의 기사들을 통해서였고, 그 기사들의 대부분은 받아적기나 추측에 급급한 질 낮은 것들이었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난 그가 비호감 연예인이었는 줄은 며칠 전에야 알았다. 며칠 전 교통사고를 낸 유명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혹시 또 다른 <감수성>의 임금이 되어 속사정을 모른 채 그들에게 윽박지르거나 야단친 것은 아니었을까. 옥주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1등을 하여 안티팬들의 노골적인 비판을 잠재운 이후 나온 또 다른 주장 중의 하나는 "주현은 이전에 개념없는 일들을 했기 때문에 싫다"였다. 나는 그 "개념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개념없는 일"이 과연 그녀가 정말 그렇게 한 일인지 여부는 연예계와 거리가 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낸 유명 아이돌 가수 역시 우리가 그의 가족이거나 관계자가 아닌 한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마치 <최고의 사랑>에서 비호감이 된 구애정에게는 말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건 연예계나 방송가에 국한해서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연일 신문에 기사화되는 저축은행 사태는 또 어떤가. 물론 나는 범법행위를 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나는 우리들이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사고하려는 시도를 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언론에서 보도하는 기사들을 외면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도되는 수많은 사태들의 본질이 그 기사들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사 하나로 간단히 매도되고 증폭되며 비호감으로 찍히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 받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긴장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 우리 역시 또 하나의 '구애정'으로 몰리게 될 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하다. 어쩌면 우린 날마다 내가 또 다른 구애정이 되지 않을까 무의식 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이상한 논리 - 거위의 배를 가르지는 말자 구보, 세상을 읽다

옥주현 보며 최고의 사랑 '구애정' 떠올라

  본 포스트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MBC공식 이미지 제공 사이트 http://withmbc.com/ 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로 포스트 접근을 제한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고현정은 꽤 긴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복귀 후 몇 개의 드라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현재 한국 최고의 탤런트의 위치에 올랐다."
 

 고현정을 이렇게 언급한다고 해서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식의 평가는 나만의 주관적 의견이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고현정'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이와 유사한 언급들이 실린 기사나 블로그의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현정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분한 그녀의 연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고현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현정은 원래 연기자 출신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스코리아가 된 후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녀가 처음 출연한 드라마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였음을 기억한다. (아마 이장의 철부지 막내딸 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고현정이 방송사 공채 출신 연기자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연기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방송사 공채 출신이라고 해도 고현정보다 연기력이 못한 탤런트들을 부지기수다) 특채이든 공채이든 아니면 막말로 낙하산이든 연기력만 갖춘다면 적어도 드라마에서 그사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명백백한 논리가 같은 연예계에서도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아니 말을 다시 해야겠다. '나는 가수다'라는 특정한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나가수'에서 새로 합류한 옥주현은 그녀가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 내가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들로 인해 비난들을 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옥주현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이돌은 우리 사회에서 선망과 경멸이라는 모순된 두 개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다.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보다는 춤같은 퍼포먼스를 전면화한다는 비난에서 대부분의 아이돌 혹은 아이돌 그룹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아이돌 가수들이 모두 가창력이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옥주현은 이미 아이돌 시절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만약 옥주현의 가창력이 떨어졌다면 과연 그 전쟁터같은 뮤지컬계에서 그녀가 그렇게 오랫동안 버텨올 수 있었을까. 누구처럼 아이돌 시절 인기를 밑천으로 뮤지컬계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게다가 요즘 기사로 도배되는 것처럼 옥주현은 '비호감'연예인이다. (난 옥주현이 비호감 연예인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왜 비호감이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시 말해 옥주현에게 아이돌 시절의 인기는 공중의 연기처럼 사라진지 오래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뮤지컬계에서 자리를 굳히게 한 힘은 오로지 실력이다.


나 역시 저번 일요일에 방영된 나가수를 봤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옥주현의 노래는 분명히 호소력이 있었고 그 역시 최선을 다해서 부른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녀가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기존의 나가수에 참여한 가수들에게 적어도 실력에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무대였다.



어쩌면 옥주현이 1등을 한 것이 사달의 원인일지 모른다. 그녀가 4위나 5위쯤 했다면 적어도 지금같은 이런 이상반응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프로그램의 편집과 순번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가 보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편집은 라이브로 노래를 듣던 당시 청중들이 순위를 매기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을 것이며, 순번 역시 맨 마지막이라고 해서 항상 유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전의 경우들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옥주현에 대한 대개의 비난은 근거없는 것이거나 괜한 트집잡기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평자는 옥주현에 대한 악플들이 나가수를 통해 희망을 보려는 약자들의 몸짓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딱하게도 비약이나 물타기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논리라면 사회적 약자들(그 평자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지만)의 주장이나 요구들은 그것이 이치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가수를 보며 가수들의 열정에 탄복을 거듭하는 평범한 시청자에 불과하다. 난 7명의 가수들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는 매번 박수를 보낼 수 박에 없다. 물론 방송 말미에 나오는 순위 결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건 500명의 청중들의 생각일 뿐, 나의 느낌과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그냥 그들의 열정어린 노래를 즐기면 된다.  


난 사람들이 나가수를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는 좀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황금알에 욕심이 나서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김연아와 F학점 - 황덕준 기자에게 구보, 세상을 읽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보면 청나라 칸이 조선 조정이 보낸 글을 보고 '(말을 빙빙돌려) 무엇을 말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조선 조정에게 보내는 글을 쓸 때 말을 돌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들에는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참 많은데 칸의 말 역시 그렇다. 물론 글의 장르나 대상이 지닌 성격에 따라 달라야 하겠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거의 분노하는 심정으로 블로그에 들어온 것은 한 스포츠 신문의 기사<[황덕준의 크로스 오버] 세계 피겨요정 김연아의 F학점> 때문이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김연아의 학점 문제를 다룬 소식들을 포털에서 접했었다. 내가 본 기사는 두 개였는데(어떤 신문이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있는 기사들을 클릭해서 본 것이라...아마 이 기사인 것 같다. )

하나는 김연아가 고려대에서 수강한 과목을 담당한 강사가 "운동선수로서 특수성을 감안하겠지만 몇 번의 이메일을 보냈으나 과제를 제출하지도 않고 아무런 소식도 없어서 학점을 줄 수 없다" 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내용에 덧붙어 운동을 하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지를 다룬 기사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난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난 김연아가 왜 굳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게다가 수업도 들을 수 없는 국내 대학에 이름만 걸어 놓는지에 대해 이전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 위에서 말한 기사를 읽고 솔직히 화가 좀 났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김연아에 대한 옹호 아닌 옹호를 하면서도 (자신의 글에 대한 비난을 예상했는지) 미셸 위 예를 들며 김연아 역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양비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기사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김연아를 옹호하는 논리가 너무 부실하다.


기사에 자신의 약력을 크게 붙인 것은(위에 링크된 원 기사를 스크롤 해서 맨 마지막을 보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내 자존심을 걸고 쓰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차원에서 보기에 솔직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일단 기사의 일부분을 보자.

 

고려대는 김연아를 입학시키면서 대학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하며 희색이었다는 보도를 기억한다. 이제와서 왜 김연아가 학업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흘리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측과 김연아 사이에 뭔가 소통이 부족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현실적으로 대학생인 김연아가 출석일수가 모자라리라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지만, “출석도 부족하고 과제물 제출도 소홀히 한다”고 공개하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궁금할 정도로 새삼스럽다.


국위선양에 탁월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와 학교공부의 문제는 늘 논란거리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스포츠대회에서 성적이 나빠지면 또 그것대로 질타할 게 뻔하다. 어느 한 순간 모든 걸 다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는 쪽으로 국가나 사회가 기대하고 있다고 오해해버리면 중압감에 시달리느라 모든 걸 잃거나 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어린 나이일수록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자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로 간주할 만하다.


김연아를 위한 조언을 했다고 하지만 진정 그런 마음이었다면 대중매체를 통해 불만스럽게 말하는 대신 당사자와 먼저 그 같은 내용을 의논했어야 했다. 외국에 나가 있어서 연락이 안됐다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오죽 많은가. 요즘 세상에서 소통의 문제를 물리적인 접선 불통으로 핑계대는 쪽일수록 변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면
 

1. 고려대와 김연아 사이의 소통이 부족해졌다.


2. 김연아의 학업태도를 문제삼는 소속 학과 교수의 자세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3. 모든 걸 잘하라는 완벽한 인물을 원하다가는 그 중압감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김연아는 어리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대 교수의 지적은 제작에 대한 불필요한 트집잡기이다.



1과 2는 사실 같은 맥락이다.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학업태도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 어떻게 소통의 문제이며 어떤 저의가 있는지 먼저 그 기자에게 묻고 싶다. 물론 김연아가 미국에 있어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면 그 특수성을 인정하여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교강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관련된 다른 기사에 실린 해당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과제를 제출하라는 메일을 몇 번씩 보냈고 해당 에이전트에도 연락을 취했는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수의 입장에서는 F학점을 줄 수 밖에 없다. 여기엔 다른 타협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학점을 준다면 그건 교수의 양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해당 학교의 권위 및 학사 관리에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다.  

3은 어떤가. 김연아가 미성년자인가. 이미 성인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저번 오서 코치와의 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을 때, 김연아는 신속히 트위터를 통해 '내가 결정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과 운명을 같이 했던 코치와의 결별이라는 중대한 일도 자신이 직접 결정하는 사람이 이런 일로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기자의 말대로  한 사람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차라리 휴학을 해라'라는 학과 교수의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휴학을 하든지, 아니면 자퇴를 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면 된다. 내 기억엔 우리나라 국민 어느 누구도 김연아에게 학사학위를 요구한 적이 없다.  

이에 덧붙여 김연아와 연락이 안됐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 역시 실망스럽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인 김연아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 그야말로 더 큰 오해나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아닌가. 아마 기자의 말대로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소셜 네트워크를 썼냐고 비난했을 공산이 크다. 기자의 말은  "조용히 해결하지, 왜 대중매체에 터뜨려서 일을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냐"는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둘째, 어설픈 양비론이 필자와 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관점이 뚜렷하지 않은 글은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법이다. 글의 논지만 본다면 기자는 차라리 끝까지 김연아를 옹호하는 일종의 '확신범'이 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미셸 위의 예는 오히려 위에서 기자가 그토록 옹호한 김연아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며, 자신이 기껏 쌓아놓은 논리를 허물어 뜨리는 일종의 자살행위일 뿐이다. 기자의 논리대로 말하면 미쉘 위는 소위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한 이런 사족은 자신이 내세운 논리가 그다지 탄탄하지 않다는 의식이 만들어낸 방어막일 가능성이 높다. 양비론을 통해 소위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 역시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이런 저런 신문들을 보면서 몇몇 기자나 인사들이 기묘한 논리들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람들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고는 한다. 이번 기사 역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지나친 생각일까.

글을 쓰는 행위가 하늘을 이고 있을 정도로 엄숙한 일이라는 식의  말을 하는게 아니다. 나 역시 감히 그런 거창한 표현을 쓸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글쓰기가 자기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행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글쓰기란 논리의 싸움이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글쟁이라면 말이다.



* 제 포스트는  특정 기사가 갖는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김연아와 고려대학교 간의 일 자체는 이 포스트에서는 논외의 일입니다. 덧글을 다실 분들은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1 2 3 4 5 6 7 8



라운드 시계

지역통계

블로그 랭킹 위젯

저작물 위젯 달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yzen저작물
본 CCL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