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Doubt, 2008)
난 대개 일본 영화나 중국 영화
혹은 영국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라고 외면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흔히 헐리우드 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런 선입견은 흔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액션영화들이나 재난영화들이 내놓는 뻔한 결말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우트Doubt>는 헐리우드가 지닌 진정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조폭영화가 한 편 대박을 치면 그 아류들이 줄줄이 나타나곤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런 수준의 영화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다우트>를 보면서 난 문득문득 클린드 이스트우드를 떠올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대표적으로 그랜토리노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라) 이는 당연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대개 이 사실을 잊는다. 영화의 인물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잔인하게도, 우리와 같은, 즉 자신을 감싸는 엄혹한 현실에 무력하고 그래서 종종 패배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애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짙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계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다우트>는 최근 몇 년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탐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라는 명제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우트> 는 사실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인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단 한 뼘도 물러나지 않으려는 두 인물의 모습, 근거없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내면서 한 인간의 성품을 재단하려는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 분)의 심리는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너무나 흔하게 범하는 행위들이 아니던가. 관객들이 부지불식간에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보낼지도 모르는 일종의 분노감은 어쩌면 그런 행위들을 아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습관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 분)이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아들이 졸업만 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진실을 마주보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나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다우트>는 불편하다. 알로이시스 수녀에 비해 인간적으로 비치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 역시 자신이 집전하는 미사의 강론에서 은유적으로 알로이시스 수녀를 ‘비난’한다. 이를 알로이시스 수녀의 회개를 촉구하는 코드로 읽힐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건 악의적 ‘비난’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비열한 행위일 뿐이다. 그런 것이다. 길 잃고 헤매는 어린 양들을 신에게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성직자나 수도자 역시 개인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난 때때로 환멸의 감정을 경험하고는 한다. 내 자신이 지닌 나약하고 미약한 모습, 남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는 비열한 모습을 생경하게 목도하는 순간들에서 경험하는 환멸의 감정은 때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싶은 극단적 상태로까지 전이되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우트>를 보면서 줄곧 피할 수 없는 감정 역시 두 인물에 오버랩되는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이었으니까.
영화가 예술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에게 반성적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우트>는 그 역할에 몹시 충실한 작품이다. 그 충실함이 비록 환멸의 감정으로 이끌지라도 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List.do?movieId=47514&t__nil_PhotoList=tabName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덧글
또한 '사실'과 '진실'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알로이시스 수녀의 '회의'는 '사실'을 곧바로 '진실'로 믿어버린 대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보면서 특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I know people.' 이라는 말과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을 내뱉는 수녀의 모습에서 한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고집을 부리는 지 느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저 여자는 성격이 안좋을 것 같다, 저 남자는 바람둥이일 것 같다
이런 추측들이 단순한 추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확신이 되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찾는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그 사람에게서 그런 행동이 발견되면 '역시 내가 맞았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음에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더욱 큰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년이 고학년이 되고 한살 두살 나이를 먹게되니 그러한 고정관념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도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처럼 '내가 사람 좀 볼줄 알지'라거나 '딱 보면 그렇잖아' 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화장이 진하다는 이유로, 단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사실 그러한
감정 뒷편에는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고 안좋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속 알로이시스 수녀가 어떤 자격지심을 느끼지는 않았을 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박한 식사와 엄격한 절제로 가득 찬 수녀의 눈에는 자유롭고 호방하며 대인관계도 좋은 신부의 모습에서
어떤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마음이 근거에 따라 주장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있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부합한 근거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회의가 든다'며 울부짖던 수녀의 모습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회의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르게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신부에게 갖었던 자신의 자격지심이 원망스러워서 그런 것도 있지않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수업시간 때 봽겠습니다 ^^
가위바위보의 신이 정해준 운명인지 발표 준비 덕분에 저는 3번 정도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처음봤을때, 2번째 봤을때, 3번째 봤을때, 각자의 매력이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3번 정도 영화를 보게되니 3번째 정도 볼때는 어느 정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각 인물들을 살펴봤던 것 같습니다. 레포트에도 서술 했던 부분인데 결국은 인물들이 나올때 제 스스로 진보주의자 플린신부 보수주의자 원장수녀 이렇게 낙인을 찍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시대상을 발표했던 발표자의 내용이 저에겐 참 흥미로웠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60년대 미국의 시대상 그리고 흑인인권법의 통과.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알고 나서 보니 그런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듯한 장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떠나서 주인공들이 이뤄냈던 정치적 권력 쟁의에 초점을 많이 두고 봤던 것 같습니다.
한살 한살 먹어가 다보니 술 한잔 기울이고 나면 많은 논의를 주고 받게 되다 결국 언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 결국은 내 의견 니 의견 나눠지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채 '그만하자' 라는 말로 마무리 짓게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 다우트라는 영화도 결국은 그런 맥락과 일치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의의 잣대를 세우고 거기에 어긋나는 순간 서로를 끝없이 의심하고 쏘아붙이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결국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정치권력 싸움, 그보다 앞선 이분법적인 편견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명품 배우들의 호연이 빛나는 영화를 보게되어 정말 재밌었습니다. 특히 비올라데이비스!
씬스틸러가 무슨 의민지 알려주는 배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너무 감명깊게 봤던 장면이라 그 분의 이름을 딴 닉네임 한번 지어봤습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지는데 항상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가운데 정도 자리에 앉아 교수님이 강의 실수하진 않으신지 doubt 하는 자세로 경청하겠습니다ㅋㅋㅋ 수고하십쇼!
그러다가 열린결말이라니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람 심리를 잘 가지고 노는 영화랄까요;; 사람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영화가 사람의 본성을 비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한 증거없이 쉽게 확신하지 말아야 된다 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내내 했던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영화는 본적이 없었는데 어려운 영화도 매력이 있네요. 다른분들의 생각을 듣는것도 제가 생각지도 못헀던 것들이 많아서 재밌던 경험이였습니다.
쯧쯧... 생각하는 구조가 그래서는 아무런 사고의 진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엾은 사람...
연결고리(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된다는 근거) = '수강생들은 교수자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을 쓰지 않고 좋은 말만 한다'
Q(결론,주장) = '초코크림님은 좋은 덧글만 보고 싶어 하는 일개 강사의 욕구를 충족한다.'
1. 전제가 참이라는 근거가 제시되었는가?
우선 이 블로그에서 초코크림님이 학생들에게 덧글을 달아달라고 했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이 블로그의 어느 글을 봐도 그러한 사실은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강내용중에도 그러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2. 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된다는 근거(연결고리)가 제시되었는가?
'수강생들은 교수자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을 쓰지 않고 좋은 말만 한다'가 연결고리입니다. 일단 연결고리는 제시가 되었으나 평가해보면, 우선 이 블로그는 수강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도 검색을 통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쓰인 모든 덧글이 수강생의 멘트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네티즌들에 의해 쓰인 글은 대립되는 의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저 명제가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대에는 교수자에 대한 대립되는 의견이 묵살당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정도?)은근히 오늘날의 대학생들을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도 모르는 멍청이들‘ 또는 ’교수자의 권위에 아부하는 아첨꾼들‘로 매도하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대학생이라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닐까요.
3. 주장의 범주(양태)는 적절한가?
‘좋은 덧글만 보고싶어 하는 일개 강사’라고 표현하신 것은 인신공격적입니다. 덧글을 조금 더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