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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의 감정을 목도하다 진실은 무엇인가(다우트)


 다우트(Doubt, 2008)
  

난 대개 일본 영화나 중국 영화

혹은 영국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라고 외면하지는 않는다.

사실 웰메이드라는 차원에서 보면 헐리우드 영화들은 장르별로 그 전범을 보여줄 정도로 수준이 높다. 대부분의 장르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특히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제작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헐리우드의 코드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걸 볼 때면 내 짐작이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고로 난 많이 보지는 않지만 헐리우드 영화도 좋아한다. 서투른 연출의 3류 액션영화만 아니라면. 

  우리는 흔히 헐리우드 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런 선입견은 흔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액션영화들이나 재난영화들이 내놓는 뻔한 결말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우트Doubt>는 헐리우드가 지닌 진정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조폭영화가 한 편 대박을 치면 그 아류들이 줄줄이 나타나곤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런 수준의 영화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다우트>를 보면서 난 문득문득 클린드 이스트우드를 떠올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대표적으로 그랜토리노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라) 이는 당연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대개 이 사실을 잊는다. 영화의 인물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잔인하게도, 우리와 같은, 즉 자신을 감싸는 엄혹한 현실에 무력하고 그래서 종종 패배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애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짙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계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다우트>는 최근 몇 년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탐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라는 명제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우트> 는 사실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인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단 한 뼘도 물러나지 않으려는 두 인물의 모습, 근거없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내면서 한 인간의 성품을 재단하려는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 분)의 심리는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너무나 흔하게 범하는 행위들이 아니던가. 관객들이 부지불식간에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보낼지도 모르는 일종의 분노감은 어쩌면 그런 행위들을 아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습관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 분)이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아들이 졸업만 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진실을 마주보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나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그래서 <다우트>는 불편하다. 알로이시스 수녀에 비해 인간적으로 비치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 역시 자신이 집전하는 미사의 강론에서 은유적으로 알로이시스 수녀를 ‘비난’한다. 이를 알로이시스 수녀의 회개를 촉구하는 코드로 읽힐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건 악의적 ‘비난’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비열한 행위일 뿐이다. 그런 것이다. 길 잃고 헤매는 어린 양들을 신에게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성직자나 수도자 역시 개인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난 때때로 환멸의 감정을 경험하고는 한다. 내 자신이 지닌 나약하고 미약한 모습, 남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는 비열한 모습을 생경하게 목도하는 순간들에서 경험하는 환멸의 감정은 때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싶은 극단적 상태로까지 전이되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우트>를 보면서 줄곧 피할 수 없는 감정 역시 두 인물에 오버랩되는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이었으니까.


 영화가 예술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에게 반성적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우트>는 그 역할에 몹시 충실한 작품이다. 그 충실함이 비록 환멸의 감정으로 이끌지라도 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List.do?movieId=47514&t__nil_PhotoList=tabName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덧글

  • Smaker 2010/03/20 16:11 #

    교수님 덕분에 저도 헐리우드 영화에 이런류의 영화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뛰어난 연기력, 연출력등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정말 누구나 완벽할 순 없다는것을 깨우쳐주며 사람들의 공통점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양주 2010/03/24 03:45 #

    제 의견을 정리해보고 교수님 글을 읽었는데... 느낀점,제가 생각한 저의 얘기가 여기 다 있어서 깜짝 놀랬어요!!! 그리고 빈약한 제 글에 다시한번 좌절..ㅜ.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당..
  • 잉여인간 2014/10/10 00:08 #

    저 또한 제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임스 수녀의 시선에 따라 영화를 보면서 플린 신부는 그럴 리가 없다, 플린 신부의 무죄가 밝혀질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의심>만 남긴 채 이 영화가 끝나서 처음에는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해보니 제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 초코크림 2014/10/14 06:01 #

    이 영화에서는 Doubt가 <의심>으로도 해석되지만 <회의>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자지막 장면에서 흘리는 눈물은 자기가 믿는 신에 대한 회의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자기자신에 대한 회의일 수도 있지요.
    또한 '사실'과 '진실'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알로이시스 수녀의 '회의'는 '사실'을 곧바로 '진실'로 믿어버린 대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잉여인간 2014/10/14 23:39 #

    확실히 그러네요. 사실과 진실은 조금 다른 것일텐데... 저도 몇 번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주장을 펼친적이 있었는데, 겨우 우겨서 이겨서 남는 건 회의감밖에 없더군요. 알로이시스 수녀도 아마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글쓰기는더럽TheLove 2014/10/14 11:50 #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한때 친척들을 따라 교회도 자주 가고, 예배도 드렸기에 신이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신도들은 자신이 믿는 신과 그 신념에 충실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특히 '천주교'라고 하면 고해성사를 다 들어주시고도 외부에 발설하지 않으시고, 또 결혼을 하지 않고 금욕적으로 살아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그야말로 거의 성인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와,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주신 한 수녀님의 이야기(정말 신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를 듣고 나니 그들 역시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스스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속절없는 환멸의 마음이 들곤 하는데 이것이 나이를 먹거나, 교수님과 같은 지식인이 되거나, 혹은 성직자가 되더라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이라 생각하니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고 다시 한 번 생각이 듭니다.
  • 초코크림 2014/10/15 16:39 #

    인간이 본래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종교와 절대자가 생긴 것이 아닐까요? 종교적 관점을 떠나서 생각해 본다면,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힘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가 가능한 것이지요.
  • 주교수님 쨩 2014/10/14 21:01 #

    제가 Doubt를 볼 때에는 알로이시스 수녀가 보이는 모습이 사납다는 이유로 플린 신부의 말이 무조건 맞다는 쪽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플린 신부의 부정을 드러내는 듯한 장면이 자주 나오기 시작하면서 무엇이 사실인지 헷갈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 주는 이 영화에서 제가 생각해보게 된 이 영화의 주안점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신념 혹은 의심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려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당사자가 신을 섬기는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인간의 그런 모습은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의 부정을 전화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 초코크림 2014/10/15 16:45 #

    왜 알로이시스 수녀가 그런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가장 불안한 것은, 아니 대면해서는 안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확신이 깨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확신은 플린 신부가 몹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고 나아가 '경헝'이라는 자신의 판단 근거와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확신이 깨진다면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구도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jojokim 2014/10/15 18:13 #

    교수님 덕분에 다우트라는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보면서 특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I know people.' 이라는 말과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을 내뱉는 수녀의 모습에서 한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고집을 부리는 지 느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저 여자는 성격이 안좋을 것 같다, 저 남자는 바람둥이일 것 같다
    이런 추측들이 단순한 추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확신이 되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찾는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그 사람에게서 그런 행동이 발견되면 '역시 내가 맞았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음에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더욱 큰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년이 고학년이 되고 한살 두살 나이를 먹게되니 그러한 고정관념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도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처럼 '내가 사람 좀 볼줄 알지'라거나 '딱 보면 그렇잖아' 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화장이 진하다는 이유로, 단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사실 그러한
    감정 뒷편에는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고 안좋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속 알로이시스 수녀가 어떤 자격지심을 느끼지는 않았을 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박한 식사와 엄격한 절제로 가득 찬 수녀의 눈에는 자유롭고 호방하며 대인관계도 좋은 신부의 모습에서
    어떤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마음이 근거에 따라 주장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있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부합한 근거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회의가 든다'며 울부짖던 수녀의 모습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회의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르게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신부에게 갖었던 자신의 자격지심이 원망스러워서 그런 것도 있지않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수업시간 때 봽겠습니다 ^^
  • 비올라 데이병설 2014/10/19 21:09 #

    다우트라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위바위보의 신이 정해준 운명인지 발표 준비 덕분에 저는 3번 정도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처음봤을때, 2번째 봤을때, 3번째 봤을때, 각자의 매력이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3번 정도 영화를 보게되니 3번째 정도 볼때는 어느 정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각 인물들을 살펴봤던 것 같습니다. 레포트에도 서술 했던 부분인데 결국은 인물들이 나올때 제 스스로 진보주의자 플린신부 보수주의자 원장수녀 이렇게 낙인을 찍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시대상을 발표했던 발표자의 내용이 저에겐 참 흥미로웠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60년대 미국의 시대상 그리고 흑인인권법의 통과.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알고 나서 보니 그런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듯한 장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떠나서 주인공들이 이뤄냈던 정치적 권력 쟁의에 초점을 많이 두고 봤던 것 같습니다.
    한살 한살 먹어가 다보니 술 한잔 기울이고 나면 많은 논의를 주고 받게 되다 결국 언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 결국은 내 의견 니 의견 나눠지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채 '그만하자' 라는 말로 마무리 짓게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 다우트라는 영화도 결국은 그런 맥락과 일치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의의 잣대를 세우고 거기에 어긋나는 순간 서로를 끝없이 의심하고 쏘아붙이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결국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정치권력 싸움, 그보다 앞선 이분법적인 편견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명품 배우들의 호연이 빛나는 영화를 보게되어 정말 재밌었습니다. 특히 비올라데이비스!
    씬스틸러가 무슨 의민지 알려주는 배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너무 감명깊게 봤던 장면이라 그 분의 이름을 딴 닉네임 한번 지어봤습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지는데 항상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가운데 정도 자리에 앉아 교수님이 강의 실수하진 않으신지 doubt 하는 자세로 경청하겠습니다ㅋㅋㅋ 수고하십쇼!
  • toddle88 2014/10/20 03:20 #

    저는 영화를 보고 생각할거리들이 장면장면 마다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근데 그것보다도 더 재미있었던것은 전체적으로 사람을 잘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를 의심하다가도 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 아닌가보다 라는 생각이 강해지면 다른 장면을 통해 다시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열린결말이라니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람 심리를 잘 가지고 노는 영화랄까요;; 사람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영화가 사람의 본성을 비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한 증거없이 쉽게 확신하지 말아야 된다 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내내 했던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영화는 본적이 없었는데 어려운 영화도 매력이 있네요. 다른분들의 생각을 듣는것도 제가 생각지도 못헀던 것들이 많아서 재밌던 경험이였습니다.
  • 치즈사리추가요 2014/10/22 12:13 #

    안녕하세요! 글 잘읽었습니다ㅎㅎ 교수님의 글을 보니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수업시간에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때 제가 조원들에게 질문한게, '그래서 알로이시스 수녀가 맞을까, 플린 신부가 맞을까' 였습니다. 물론 영화가 둘 중에 누가 맞는지 결론을 알려주지 않고, 영화 내용에서도 내내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지만, '정말 헷갈리지만 사실 진실은 이렇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저는 왔다갔다 하면서도 대부분은 알로이시스 수녀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고, 다른 조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조원들은 플린 신부의 입장에서 봤다고 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그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플린신부가 진짜 당당하면 왜 수녀가 전화해서 물어봤다고 하는 부분에서 화를 내는지, 왜 속시원히 해명하지 않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수녀 편을 든 것인데, 다른 조원들은 그 부분에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더라구요. 저 역시도 플린 신부의 정말 사소한 행동을 보면서 그 점들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인간관계에서도 사소한 것에 몰입해서 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았나, 사소한 행동을 지나치게 추론해서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느끼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토론과 교수님의 글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네요! 그럼 수업시간에 뵙겠습니다^^
  • 으헉뜨헉 2014/10/29 20:24 #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저는 플린신부 입장에서 영화를 봤는데요. 끝없는 교장수녀의 의심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명확한 근거 없이 자신의 경험과 느낌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의심하는 교장 수녀. 끝까지 자신의 확신을 밀고나가더군요. 자신의 이러한 확신을 한번쯤 의심해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영화의 맨끝에서 회의감을 느꼈을지 궁금하네요. 결국 의심이라는 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문제인데 그 신뢰를 깨는 요소를 타인이 제공했다면 이러한 의심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카톨릭의 분위기 변화나 플린신부의 개방적인 성격 등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이유로 그를 의심하고 배척하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교장 수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할 것 같습니다.
  • 보고서는 마감날에 2014/11/16 10:51 #

    저도 사실 글을 쓰면서 알로이시스 수녀에 대해서 유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영화 내내 비치는 수녀의 모습은 명백한 내적 갈등 안에 빠져있는, 플린 신부가 첫 설교에서 말한 "난파된 선원"이나 비슷한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그녀의 본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알로이시스 수녀가 가장 마지막에 언급했던 "나도 의심을 한다"는 말이 결국 그녀도 굉장히 나약하고 상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녀가 자각했다는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 알로이시스 수녀에 대해서 제임스 수녀는 일말의 동정심이나 동질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싶군요. 또, 영화 내에서 나타난 인간 군상들은 플린신부의 설교 속에서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 채플결석계 2014/12/09 17:13 #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그랜토리노를 얼마 전에 봐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더욱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교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플린신부에 대한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 또한 불완전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은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되어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갑니다. 또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녀의 의심에 맞추어 해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심리학적 용어인 확증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합리적 사고, 즉 완전한 인간이 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심리학적 기제입니다. 즉 알로이시스 수녀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확증편향 또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pilljj 2015/04/22 22:07 # 삭제

    글을 자신이 강의하는 학생들에게 멘트를 달아달라고한다라....글쎄 누가 대립되는 의견을 쓸까..?좋은 말보단 자신의 발전이 되는 대립되는 의견에 더 충실히 임하여야할것같네요 좋은 댓글만 보고싶어하는 일개 강사의 욕구를 충족했을진 몰라도?
  • 초코크림 2015/05/29 09:40 #

    늦게 글을 확인했지만 일단 그 비뚤어진 사고에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충고를 하고 싶네요. 제대로 된 교수자라면 논리적 대결을 기뻐하고 즐겨하지 입맛에 맞는 글만으로 자족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 아닐까요.

    쯧쯧... 생각하는 구조가 그래서는 아무런 사고의 진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엾은 사람...
  • pilljj 2015/06/16 11:17 # 삭제

    초코크림님은 본인 스스로 제대로 된 교수자이고 상식에 맞는.행동만 하신다고 칭하시고 저는 비뚤어짐 사고를 가진 가엾은 사람이라.. 글쎄 과연 본인 스스로 잘못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제대로 된 교수자가 맞는지에 대한 답은 초코크림님이 댓글을 단 내용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비판에 무조건적인 방어적 자세가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군요^^ 상대방에 대한 발전이 있고 없고에 대한 평을 그리 감정적으러 쉽게 하는 모습이 성숙되 보이지는 않는군요!^^
  • ㅇㅇ 2015/06/05 01:06 # 삭제

    P(전제) = '초크크림님은 자신의 글을 자신이 강의하는 학생들에게 덧글을 달아달라고 한다'
    연결고리(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된다는 근거) = '수강생들은 교수자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을 쓰지 않고 좋은 말만 한다'
    Q(결론,주장) = '초코크림님은 좋은 덧글만 보고 싶어 하는 일개 강사의 욕구를 충족한다.'

    1. 전제가 참이라는 근거가 제시되었는가?
    우선 이 블로그에서 초코크림님이 학생들에게 덧글을 달아달라고 했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이 블로그의 어느 글을 봐도 그러한 사실은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강내용중에도 그러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2. 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된다는 근거(연결고리)가 제시되었는가?
    '수강생들은 교수자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을 쓰지 않고 좋은 말만 한다'가 연결고리입니다. 일단 연결고리는 제시가 되었으나 평가해보면, 우선 이 블로그는 수강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도 검색을 통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쓰인 모든 덧글이 수강생의 멘트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네티즌들에 의해 쓰인 글은 대립되는 의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저 명제가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대에는 교수자에 대한 대립되는 의견이 묵살당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정도?)은근히 오늘날의 대학생들을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도 모르는 멍청이들‘ 또는 ’교수자의 권위에 아부하는 아첨꾼들‘로 매도하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대학생이라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닐까요.

    3. 주장의 범주(양태)는 적절한가?
    ‘좋은 덧글만 보고싶어 하는 일개 강사’라고 표현하신 것은 인신공격적입니다. 덧글을 조금 더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쓰시기 바랍니다.
  • pilljj 2015/06/20 14:16 # 삭제

    글 잘읽었습니다. 제가 아첨꾼 멍청이로 매도한 적은 없죠 님 역시 상당한 논리적 비약에 의한 글쓰기를 하신 것같군요 물론 모든 대학생이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비판적 사고를 할 줄 모르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 ebs '우리는 왜 대학을 가는가?'에서 한국 대학문화에 대해 비판을 할 정도로 현 대학 문화가 그리 토론식으로 흘러가고 교수말에 딴지를 걸 수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제 말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현 대학문화를 제대로 캐치를 못하신건지. 아니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신것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다수의 글에 '교수님의 xx'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글은 모두에게 열려있으나 압도적으로 이 강사분께서 가르치시는 학생들에 의한 댓글이 90%정도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짜임새 있게 비판하셨으나 그 무게감은 크게없군요 님도 '교수님의 강의 중에 그런 말이 없었다'라는 것으로 보아 수강생인데 좋은 학점 받길 바라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여가 댓글이 점수에 가산점이 들어가거든요^^ 무튼 님 말대로 '제대로 된 대학생'이라면 이 블로그의 글에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댓글을 달 줄도 알아야되는 것이죠. '제대로 된 대학생'이 강사의 생각과 한치도 다르지않으면 자신의 생각은 없다는 것과 다름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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